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 때 광복 70주년 남북 공동 행사를 열자고 제안했다.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항일전 승리 70주년 행사에 박 대통령이 참석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은 답을 않고 있다. 러시아는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미국, 중국, 일본, 남북한을 초청했다. 한·일은 침묵하고 있다. 북한은 긍정적 신호를 보냈고, 버락 오바마는 불참, 시진핑은 참석한다.

미국은 박 대통령이 러시아에 가지 말라고 말린다. 야당은 가라 하고 여당은 말이 없다. 전문가들도 제각각이다. 보수 인사 사이에서도 엇갈린다. 미국이 한국에 고고도 미사일 방어망(THAAD·사드)을 도입한다고 했을 때 한국은 환영했다. 이후 중국이 반대하자 한국은 침묵하기 시작했다. 한반도 주변 국가들은 서로 얽혀 있지만 참석, 불참, 침묵의 불연속선이 말해주듯 잘 맞물려 돌아가지는 않고 있다. 특히 한국은 침묵의 자리를 맴돌고, 머뭇거리고 주저하며 모호하게 행동한다. 미국은 그런 한국을 동맹의 틀에 단단히 묶어두려 하고, 중국은 그 결박을 풀기 위해 유인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을 떠날 수 없지만, 중국을 포기할 수도 없다. 한국이 냉전 이후 미·중 간 양자택일의 상황을 피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균형외교, 이명박 정부의 실용외교, 박근혜 정부의 조화외교는 이름만 다를 뿐 다 조화와 병행이었다. 그건 역대 정부가 실제 그 목표에 부합하는 외교를 하려는 능력과 의지가 있었는지,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와는 다른 문제다. 미·중, 중·일 간 균형은 변함없는 한국 외교의 목표였고, 지정학이 한국에 안겨준 운명이었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구상 역시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실제 이 구상들은 장롱면허와 같았다. 현실을 움직이는 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남북 대결, 동북아 갈등, 유라시아 개발을 위한 남북·러 협력에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그 구상들이 어디에 쓸지 알지도 못하면서 화려한 겉모습에 현혹돼 충동 구매한 박 대통령의 사치품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을 품게 한다. 이제 그게 정당한 의심이었는지, 부당한 편견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 초청에 어떤 대응을 하는지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그가 참석 여부를 최대한 늦추는 신중함을 이해할 수 있다.

만일 그가 모스크바에 가기로 했다면 사전 남북 접촉을 갖고 정상회담 의제를 정해야 한다. 푸틴을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남북·러 정상회담을 개최, 유라시아 구상 실현 방안을 마련하면 좋을 것이다. 김정은이 가지 않아도 푸틴과 남북·러 협력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갈 필요 없다. 푸틴이 양옆에 박근혜·김정은 앉혀놓고 사진이나 찍는 그런 정상회담을 위해 무리할 이유가 없다. 만일 북·중·러 및 북·일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그게 초점이 될 것이다. 그렇게 들러리를 서느니 가지 않는 게 낫다. 5월이면 이희호 여사가 방북한다. 이 여사에게 대통령 특사 자격을 부여,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면 모스크바에서 만날 때보다 대화를 내실 있게 할 수 있다. 모스크바에 가지 않더라도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남북·러 3자 대화로 발전시켜 유라시아 구상을 구체화할 수 있는 길은 있다. 최악의 선택은 서울에 남아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압력으로 모스크바행을 포기한, 자주권 없는 국가로 국제적 낙인이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한국 외교에 치명상을 줄 것이다. 그런 처지로 내몰리느니 차라리 모스크바에 가서 들러리라도 서는 게 낫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_ AP연합


탈냉전 이후 한국 외교의 과제는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냉전기의 대립 구도를 깨는 것이다. 그런 구도가 존재하는 한 한국의 진로는 없다. 남북대결 상태를 계속 방치하고, 북한 비핵화에 손 놓고, 미·중 및 중·일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면 휴전선은 한반도의 분단선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건 동북아를 두 쪽 내는 절단선, 유라시아로 가는 길을 막는 차단선으로 확장된다. 가느냐, 안 가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 평화를 지키고 한국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주도적·능동적 역할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게 핵심이다. 가든 안가든 떠밀려서 혹은 어떤 핑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목표를 향해 능동적으로 선택한 것이 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누군가가 정해 놓은 신호등 불빛 따라 건널목을 건넜다. 그러나 요즘 신호등에는 빨간불, 파란불, 노란불이 동시에 들어온다. 남이 보내는 신호를 따라갈 수 없다. 한국의 판단으로 건널지 말지 정해야 한다. 외교에 관한 한 한국은 스스로를 과소평가해왔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그걸 보여주어야 한다.


이대근 논설위원


Posted by 경향 이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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