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안보는 사람으로 치면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신병을 주술로 치유할 수 없듯이 국가 안위를 이데올로기에 맡길 수는 없다. 이데올로기는 실재하는 안보현실이 아닌,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상상 속의 안보를 바라본다. 그래서 이데올로기는, 안보가 냉정한 현실정치의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자주 잊게 한다. 요즘 한국의 보수세력이 그렇다. 자기 이데올로기를 표현할 수 있는 어떤 도구를 발견하자 안보 아닌, 도구에 집착한다. 사드. 미국 국방부가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 한국 배치를 정식 요청하지 않았다는데 이름만 듣고는 신성시한다. 북한 핵 미사일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 사드 배치론은 금세 그들의 종교가 되었다. 신의 방패를 숭배하는 ‘사드교’.

그러나 한반도는 이 무신(武神)이 재림하기에는 척박한 땅이다. 북한은 아직 미사일에 핵탄두를 올릴 수 있는 소형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소형화했다 해도 대기권 재진입 시의 고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걸 해결했다 해도 노동미사일을 남쪽으로 쏘는 게 쉽지 않다. 비행거리를 줄이기 위해 발사 각도를 직각에 가깝게 쏴야 한다. 자칫 북한 땅에 떨어질 수도 있다. 무사히 남쪽으로 날아가도 사드 탄두 중량이 노동미사일 탄두 중량에 비해 너무 작아 맞혀도 파괴하기 어렵다. 사드의 요격 능력도 검증된 적이 없다. 개발 단계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보수는 검증되지 않은 무기로 존재하지 않는 핵탄두를 맞히는 상상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핵미사일이 아니라 핵포탄·핵배낭 같은, 더 쉽고 편리하지만 남쪽에서는 결코 막을 수 없는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 굳이 핵이 아니더라도 방사포, 스커드 미사일 등 위협할 방법은 많다. 전쟁을 각오하면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 도발 방지는 탄두·포탄을 맞혀 떨어뜨릴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을 보유했느냐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어느 날 모든 걸 막을 수 있는 방패가 나온다 해도 언젠가 모든 걸 뚫을 수 있는 창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위협 방지 수단을 갖는 것보다 위협 의사를 갖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미국의 핵우산이 바로 북한의 핵사용 의지를 꺾기 위한 것이다.

억지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외교다. 북한과 대화하고 관계를 개선하면 위협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미국이 한국을 공격하지 않는 건 미국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한국과의 관계 때문이다. 최근 미·중 경쟁 구도가 한반도에 몰고 오는 먹구름 역시 중국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사드가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본능으로 느낀다. 대만 사태로 미·중이, 센카쿠 열도로 중·일이 충돌할 때 주한미군이 개입하는 상황에 대비해온 중국은 주한미군을 표적으로 미사일 배치를 하고 있다. 만일 사드가 배치된다면 이 전략적 균형이 깨진다. 게다가 사드 배치는 한·미·일 미사일방어(MD) 협력체제를 촉진한다. 한국이 북·중·러를 대상으로 하는 이 3각 MD 체제에 편입되는 순간 한국은 중국을 겨누는 창이 된다. 중국이 좋아할 리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자주색 띠) 서훈식을 마치고 접견장으로 향하고 있다.(출처 : 경향DB)


한국은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이렇게 냉전형 대립 구도로 흐르는 걸 막아야 한다. 이 구도의 최대 피해자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하는 일은 두 가지뿐이다. 손 놓은 채 문제가 저절로 풀리길 기다리거나, 뭔가를 하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거나. 둘을 창의적으로 조합한 것도 있다. 사드 반대·환영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세 번이나 환영한다며 사드 배치로 쏠린 마음을 드러내놓고는 전략적이지도 모호하지도 않은 전략적 모호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원칙도 실리도 없는 이 눈치외교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러시아 전승절 참가 문제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포기로 군사주권을 넘김으로써 미국에 발목 잡힌 박근혜 대통령이 미·중 균형을 추구하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임무였을 것이다. 중국이 배치하지도 않은 사드로 한국을 몰아붙이는 것도 이런 약점을 가진 박근혜 정부의 미·중 균형 잡기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한 것일지 모른다. 양국의 차이를 조정하는 일에 아무런 역할도 못하는 박근혜·시진핑 밀월은 도대체 무엇에 쓰려는 거였는지 알 수 없다.

주변국과의 갈등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갈등이 대화·협력에 의해 상쇄되거나 통제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을 제외한 모든 주변국과, 북한은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주변국과 불편해졌다. 이들이 부딪치며 내는 작은 불꽃이 큰 불길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모두 사드 이야기만 하는 건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종교이고, 누군가에게는 압박카드이며, 누군가에게는 큰 수익을 안겨주는 대박인 사드. 우리에게는 불안의 상징이다. 평화의 실패, 외교의 실패가 드리우는 그림자다.


이대근 논설위원


Posted by 경향 이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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