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부드럽게 하되, 큰 몽둥이를 갖고 다녀라. 그럼 멀리 갈 수 있다.’ 아프리카 속담으로 현실주의 외교를 상징하는 표어로도 자주 인용되는 이 속담은 20세기 최초의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인용하면서 유명해졌다. 조지 W 부시는 이 조언과 반대로 행동했지만 미국 패권 쇠퇴, 중국 부상으로 미·중이 경쟁과 협력을 해야 하는 시대다. 마냥 무시하기는 어렵다. 말과 몽둥이 모두 필요하지만, 결코 몽둥이를 앞세워서는 안되는 세계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정상은 만날 때마다 할 말 다 하는 ‘솔직한 대화’를 하고, 간혹 군사력 시위로 긴장을 조성하기도 한다. 루스벨트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몽둥이를 앞세우지 않고, 경쟁하느라 협력을 깨는 모험은 않는다. 선을 지키는 것이다.

이런 미·중관계는 아시아 패권을 놓고 줄타기를 하는 중·일관계에도 그대로 복제되고 있다. 갈등기를 거쳐 협력기로 가든, 갈등과 협력을 병행하든 거친 말과 몽둥이가 오랜 기간 동시에 동원되는 일이 드물다. 비동맹 운동을 시작한 인도네시아 반둥회의 6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간 정상회담은 이런 외교의 미묘함을 잘 보여준다. 일본 언론은 5개월 전 중·일 정상회담 때 굳은 얼굴을 했던 시 주석이 이번엔 “웃었다”고 환영했다. 반면 중국 중앙TV는 굳은 표정만 보도했다. 어느 것이 시 주석의 진짜 표정인지 진실게임을 할 필요는 없다. 외교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2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를 마친 뒤 가진 중·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_ AP연합


외교 현장에선 웃는다고 웃는 게 아니다. 특히 복잡한 동아시아 외교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표정에서는 외교의 복잡성을 읽을 수 없다. 북·중·일이 참석하는 반둥회의에 그가 갔다면 그 역시 다양한 표정을 지어야 했을 것이다. 활짝 웃거나 굳은 표정이거나 둘 중 하나에 익숙한 그로서는 불편한 자리다. 역시 그래서였을까? 박 대통령은 그곳 대신 현안도 없고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는 중남미 도피외교를 택했다. 1년 전 계획한 거라 바꿀 수 없었다고 해명했는데, 반둥 60주년 행사도 1년 전부터 정해진 것 아니었나? 그 해명은 1년 전부터 갈 생각이 없었다는 증거일 뿐이다.


이대근 논설위원


Posted by 경향 이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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