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22세기, 물과 기름을 차지한 독재자 임모탄의 다섯 아내들은 탈출에 성공한 뒤 절단기로 정조대를 끊는다. 정조대가 임모탄에게는 사랑의 자물쇠였겠지만, 아내들에게는 구속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영화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에 나오는 이 장면은 여성성의 해방, 자유의 회복을 의미한다. 사랑은 자연스러운 열정이다.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알 수 없는 교통사고와 같이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다. 그래서 사랑은 자유의 표상이다. 그러나 사랑은 스스로 구속하는 속성도 있다. 파리시는 퐁데자르 다리의 명물인 ‘사랑의 자물쇠’를 철거했다. 연인들이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나무 난간에 채워놓은 자물쇠가 무려 100만개에 이르자 안전상 철거한 것이다. 사랑의 자물쇠는 자유 의지로 사랑을 구속하려는 시도이지만 사랑은 그 구속조차 거부한다. 이게 사랑의 모순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 제프리 쿠퍼 박사는 실험을 통해 이성이 매력적인지 판단하는 데 1000분의 1초도 걸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험대상자에게 수초간 이성의 사진을 보여준 뒤 이들을 한방에 모아놓고 5분간 대화하도록 한 결과, 사진 호감도와 대화 후 호감도가 63%나 일치했다. 이성 선택이 매우 즉흥적인 것이다. 사랑이 끝나는 속도 역시 생각보다 빠르다. 미국 코넬 대학의 신시아 하잔 교수는 사랑의 유효 기간을 18~30개월로 잡았다. 물론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3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아이의 생존이 보장되기까지 3년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휴먼다큐멘터리 사랑2015의 한 장면 (출처 : 경향DB)


그래서 ‘끝없는 사랑’을 원하면 3년 이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이건 알고 사랑하는 게 좋다. 뇌과학적으로 사랑은 판단 중추인 전전두피질의 비활성화, 사회 인지에 관여하는 두피질 영역인 측두극과 두정측두 결합부의 비활성화에 기인한다. 한마디로 판단력, 비판기능의 마비를 뜻한다. 병리학적으로 사랑의 증세가 정신병과 유사하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 위험한 사랑에 빠져 인류가 멸망할까 걱정된다면 사랑의 유효 기간을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다. 사랑 이후에는 무엇으로 사느냐고? 정, 의리, 우정, 연대 뭐 이런 것도 있지 않나.


이대근 논설위원

'정동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골 목욕탕에서  (0) 2016.01.05
[이대근 칼럼] 우리는 이렇게 살 이유가 없다  (0) 2015.11.24
[여적]사랑의 자물쇠  (0) 2015.06.02
[이대근칼럼]봄날은 간다  (0) 2015.05.20
[여적]관상과 성형  (0) 2015.04.29
[여적]두 손 든 아이  (0) 2015.04.01

Posted by 경향 이대근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