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제작된 일본 영화 ‘라쇼몽’에는 처한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진술을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영화에서처럼 갈등하는 당사자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각각 다르게 말한다면 진실을 분별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재신임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 논쟁에서 전적으로 틀린 쪽이나, 옳은 쪽을 구별해내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당 밖의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세력이 스스로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들었다. 자신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당원이나 시민들이 알아서 처분해 달라고 매달리고 있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사진)은 지난 14일 공개한 팟캐스트 <이대근 단언컨대> 제 91회 ‘여론을 묻겠다면 당을 해체하라’에서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을 둘러싼 새정치연합 내 갈등을 ‘라쇼몽’에 빗대 설명했다.




■문재인의 입장

‘당 대표만 되면 다른 계파들이 흔드는 것이 새정치연합의 나쁜 습성이다. 도대체 지도력을 존중해주는 문화, 조직 규율이 전혀 없다. 탈당, 신당이니 하며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대표를 무너뜨리려 하는데 어떻게 당대표의 영이 설 것이며, 당을 제대로 이끌 수 있겠나. 이게 60년 역사를 가졌다는 정당인가, 콩가루 집안이지. 이런 상태라면 재신임 받지 않고 어떻게 당 지도력을 회복할 수 있겠나. 하루 빨리 당 대표 재신임 여부를 정해서 당을 안정화시킬 필요가 있다.’

‘혁신위원회는 당 재건을 위한 안을 마련해왔다. 그런데 비주류는 혁신위를 친노 집단으로 매도하며 좌초시키려 했다. 김상곤 위원장은 안철수 의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위원들 가운데 친노라고 할 만한 인물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혁신위를 부정한다면 공천에서 물갈이 대상될까봐 혁신안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안철수의 입장

‘나는 처음부터 혁신위에 부정적이었다. 위원장직을 거부한 것도, 권한도 지위도 불분명한 혁신위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혁신위가 그동안 한 것은 당 제도 개선에 불과하다. 당이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인데, 제도 일부 바꾸는 것으로 위가가 해결되지 않는다. 혁신위 활동의 결과로 총선 승리 전망이 생겼는가? 전혀 아니다. 그렇다면 혁신위 활동은 실패한 것이다. 그런 혁신위 활동은 당 대표 재신임을 물을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중앙위원회를 열어 혁신안 통과를 결정하고 당 대표 재신임을 해봐야 당 내 제 세력 간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권력 투쟁만 남는다. 혁신 논쟁을 권력 투쟁으로 변질시키지 말고 당내 논의로 풀어가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7월16일 국회 대표회의실에서 열린 국정원 불법 해킹 프로그램 시연 및 악성코드 감염 검사를 진행하기 앞서 안철수 의원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_강윤중 기자




■비주류의 입장

‘문재인 대표는 리더십이 없다. 문재인 대표에 대한 호남의 불안감과 거부감으로 당을 바로 세울 능력이 없다는 것이 사실상 드러났다. 그래서 현재 총선 승리 전망이 안 보이는 것이다. 총선 전망이 없으면 대선 전망도 없다. 이렇게 미래가 확정적인데 문재인 대표가 그대로 눌러 앉아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야말로 당을 망치는 일이다. 이대로 당이 패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느냐.’

■혁신위의 입장

‘당의 체질을 바꾸고 당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제도적 방안을 마련했고 당 기구를 통해 추인 받는 등 당 내 지지를 받고 있다. 당 조직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와 조치를 도입했기 때문에 이 방안대로 조직을 운영하면 당의 안정화를 기할 수 있다.’

‘비주류가 혁신위를 친노라고 공격하는 것은 혁신을 좌절시키려는 것이다. 혁신의 결과, 공천 받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할까봐 그러는 것이다.’

다 틀린 이야기다. 이들은 각기 자기 입장만 변호하고 있다. 당 내 제 세력들이 자신을 변호하고 상대의 문제를 지적할 때는 다 옳은 말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틀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 <라쇼몽>




■문재인

문재인 대표가 재신임을 받으려면 애초 재보선 패배 직후에 했어야 한다. 그때 재신임 여부를 결정했으면 지금 이런 일이 없었다. 시기를 놓친 것이다. 계파 갈등이 극심한 때에 더 이상 지도력을 행사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재신임 카드를 던졌다. 그러니 문재인 대표가 자신의 탈출구를 찾기 위해 재신임 카드를 냈다는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혁신안이 가결되고 제가 재신임을 받는다면 혁신위나 제 거취를 둘러싼 논란을 끝냅시다.” 그러나 혁신위 논란은 끝날 수 없다. 혁신 결과로 총선 전망이 생겼느냐 할 때 긍정적으로 답을 할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문재인 대표는 혁신을 계속하겠다고 하지만, 혁신위라는 특별 기구를 두고도 못한 혁신을 어떻게 계속 할 수 있겠나. 그리고 재신임 여부, 재신임 절차 자체로 또 다른 갈등을 촉발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재신임 이후에도 논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재신임 이후는 본격적인 갈등과 대결의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이 때 그가 감당할 수 있을까.

“포용과 단합을 향한 노력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총선 승리를 위한 총력 체제, 재창당에 가까운 뉴 파티 비전도 제시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표의 말이다. 포용·통합 등 지금까지 못해온 것을 재신임 이후 할 수 있을까. 갈등이 더 증폭될 텐데 문재인 대표가 재창당을 주도할 지도력을 확보할 수 있겠나. 반대파를 유인할 능력도 없을 것이고 배척할 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분당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안철수

안철수 의원은 느닷없이 혁신위를 공격했다. 혁신위는 위임받은 조건에서 일 할 수 밖에 없는 조직이었다. 외부 인사로 구성된 조직을 문재인 비판위한 수단으로 동원한 것은 잘못이다. 혁신위의 제도 개선은 그것 대로 평가하고, 혁신위 차원이 아닌, 당 지도부 차원의 본격적인 혁신을 촉구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혁신위 활동의 한계는 당의 한계를 반영한 것이다. 이를 혁신위에 물을 일이 아니었다.

만약 혁신위 활동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처음부터 혁신위에 관해 지적해야 했다. 그가 위원장 제의를 받았을 때 혁신위의 지위와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공론화하고, 혁신위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책임 있게 행동해야 했다. 그러지는 못하고 혁신위 활동이 마무리하는 시점에 와서야 공격하는 것은 책임 있는 지도자의 행동이 아니다. 혁신의 한계는 혁신위가 아닌 당 전체에 물었어야 했다.

문재인 대표를 공격하기 위해서 탈당 후 신당을 추진하는 천정배 의원을 만난 것 역시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복당을 요청했다는 것으로 그 만남을 정당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날 발언 내용이 아니라 신당 추진 핵심을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4·29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무소속 천정배 당시 후보가 지난 4월29일 오후 광주 서구 금호동 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두 손을 번쩍 들어 환호하고 있다._연합뉴스




■비주류

비주류는 하나가 아니다. 문재인 편이 아닌 다양한 집단을 하나로 묶는 용어라는 점에서 비주류라는 말은 단순화의 오류가 있다. 강경 반대파로만 한정할 때 비주류는 사실 대안이 없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왔다. ‘문재인 반대’라는 원칙만 있지, 그 다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없다.

당 지도부 흔들기는 새정치연합의 고질병이다. 김한길·안철수 의원이 당 대표 때도 반대파가 흔들었는데, 이제 문재인 대표 체제를 비주류가 흔들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런 악습의 반복을 끊어야 한다. 안철수 의원 역시 대표 때 지도부 흔들기를 실감했다면, 문재인 대표 개인을 향한 공격처럼 느껴지는 공세를 자제해야 했다.

총선을 앞두고 전당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문재인 대표만 물러나면 당이 나아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고민이 없다. 문재인 대표의 지도력에 문제가 있지만, 그런 지도력의 한계를 낳는 당 자체의 한계를 극복하지 않으면 문재인 대표가 물러나도 달라질 게 없다. 그런데 강경 비주류는 오직 문재인 대표만 물러나면 다 해결될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가 몰매를 맞고 물러나면 당 대표의 권위는 땅에 떨어질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 누가 당 대표가 되든 조직의 기강이 무너지고 지도력은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혁신위

혁신위 활동이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혁신위 활동의 결과 총선 승리 전망이 생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혁신위가 제도 개선안을 마련했지만 이건 혁신의 일부분이다. 그게 당 혁신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게 통과됐다고 대안정당이 될 수 없다. 혁신안이 당 대표의 재신임 여부를 가릴 만큼 대단한 것 역시 아니다.

혁신위가 비주류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당했지만, 이는 혁신위가 비주류를 공격한 것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혁신위는 문재인 편이라는 인상을 피하고 주류와 비주류 중간의 지점에서 활동했어야 설득력을 높일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때로는 친노나 문재인 대표 쪽을 향해 칼을 드는 모습도 보였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비주류에게 공격의 빌미를 준 측면이 있다.

그러나 혁신위 실패가 혁신위의 책임은 아니다. 문재인 대표, 당 지도부, 의원들이 혁신위를 구성해놓고 무관심하게 방치한 책임이 있다. 당에 혁신의지와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실패한 혁신위가 나타난 것이지, 혁신위가 실패해서 당의 비전이 상실된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비주류의 혁신위 비난은 책임전가로 비친다. 비주류 역시 혁신을 위해 노력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당무위원회의에서 김상곤 혁신위원장, 조국 부위원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당무위원회의에서는 당 혁신위가 발표한 공천안 채택 등에 대해 논의했다. _강윤중 기자



■자기 성찰은 없다

모두 맞고, 모두 틀렸다. 남의 흠결을 지적할 때는 다 맞는 말을 한다. 그러나 자기 세력의 허물을 감추고 남의 말만 한다는 점에서 모두 틀린 말이다.

당 내 세력 모두의 잘못이 오늘 새정치연합의 분란을 낳았다. 그런데 이걸 외부에다가 시비를 가려달라고 한다. 어불성설이다.

당 내 실패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자신이 다른 세력보다 약간 더 선의가 있다고 주장해봐야, 자기 책임 회피의 근거를 잘 만들어 놔봐야 그가 속한 당은 망가지고 있다.

■새누리당에게 배워라

새정치연합은 당 내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시민에게 물어보자’ ‘당원에게 물어보자’고 한다. 여론조사 기관을 선정해서 전화를 돌리면 어떤 결과든 나오기 때문이다. 아주 쉬워 보이지만 이건 무책임 정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당 내 사안에 대해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해 결정한다면 의원들은 뭐하러 있나. 지지자들이 뽑아준 의원들은 허수아비인가. 전화를 돌려서 판가름을 내겠다는데 의원들이 가만히 있는다면, 130명이나 되는 의원들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자인하는 것이다. 당원과 시민들이 ‘우리는 일일이 당 내 현안 따지고 시시비비 가릴 여유가 없으니 그 일을 맡아 달라’고 뽑은 지도부인데 당의 운명이 걸린 가장 중요한 문제를 전화 돌려서 결정하겠다면 당 지도부가 왜 있어야 하는가. 여론조사 용역 맡길 직원만 있으면 되지 당 지도부는 왜 필요한가.

■새정치연합은 여론조사 기관을 신으로 섬겨라

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당원과 시민들에 의해 위임된 일을 못하겠다면 이는 곧 자기부정이다. 새누리당이 집권세력 내부 갈등을 내부에서 스스로 해결한 것처럼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발생한 이 문제도 스스로 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도 정말 여론조사에 맡기겠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 전원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 당 지도부도 사퇴해야 한다. 당 조직도 해체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여론조사를 돌려야 한다. 그게 올바른 순서다.



정리|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이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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