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권력 집중의 부정적 현상과 권력 쇠퇴의 부정적 현상이라는 이중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권력의 집중은 나쁘고 분산은 바람직하다는 이분법을 전제로 하는 말이 아니다. ‘권력이 있다’는 것은 문제 해결 능력이 있다는 의미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것만큼이나 우려되는 상황은 권력이 지나치게 약해 문제 해결 능력을 잃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이 문제야” 할 때 그건 권력의 집중이나 분산 가운데 하나가 아닌, 그 둘 모두에 내재되어 있는 한계가 중첩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권력 약화를 21세기 특징으로 제시한 모이제스 나임의 <권력의 종말>을 최근 읽었다. 그에 따르면 권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쇠퇴한다. 권력은 열역학 제2의 법칙 엔트로피를 따르는 것 같다. 권력은 제국에서 국가로, 독재국가에서 민주국가로, 거대 정당에서 소수 정당으로, 수도에서 지방으로, 행정부에서 사법부로, 지도자에서 개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권력은 다른 사람을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하는 능력이다. 당연히 국가, 군대, 관료, 기업, 정당, 지도자, 대학은 더 많은 권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권력이 예전 같지 않다. 201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집권당이 과반 의석에 미치지 못하는 국가는 30개국에 달했다. 반면 2008년 민주국가에서 소수 정당들이 차지한 의석 비율은 55%였다. 17개 유럽 국가에서 현역 의원 득표율은 1940년대부터 계속 감소 중이며 정권 유지 기간은 짧아지고 있다. 권력 잡기는 더 쉬워졌지만 권력 행사는 더 어려워지고, 권력 유지는 훨씬 더 어려워진 것이다.

이런 세기적 흐름은 한국에서도 발견된다. 독재의 민주화, 거대 양당 및 지도자들이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현상이 그렇다. 바로 김무성, 문재인이 처한 상황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미 상당수의 재벌이 몰락했다. 군대, 대학, 지도자의 발언권도 약해졌다. 그러나 그 반대 현상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 집중은 유별나다. 재벌은 그 수가 줄어든 대신 경제력 비중은 더 높아졌다. 집권당은 세계적으로 드문 절대 다수당이다. 관피아라는 말이 나돌 만큼 관료의 힘은 여전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7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_경향DB



그렇다고 한국을 예외로 분류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강한 권력이 일시적 현상일 수도 있고, 그 권력이 전보다 약해진 상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적 현상을 찾으려면 권력 전반의 쇠퇴 여부보다 권력 간의 관계를 살펴야 한다. 가령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보자. 국정화는 야당과 지식인은 물론 정부도, 집권당도 지지하지 않았다. 오직 대통령만이 그걸 원했다. 그런데 대통령과 여당 관계에서 대통령이 더 많은 권력을 갖고 있다. 여야 간 권력은 여당 쪽에 기울어 있다. 국정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이 권력의 위계다. 이런 권력관계에서는 대통령과 여당의 권력이 전보다 약해졌다 해도 문제 있는 정책을 실행하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 이른바 노동개혁, 여야의 국회법 개정 합의 무산이 이미 그걸 입증했다.

이런 권력 배분의 문제는 대통령·여야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행정부와 입법·사법부 간은 물론 기업과 노조,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졸과 고졸, 서울과 지방, 남성과 여성 사이 전 분야에서 발견된다. 권력이 쇠퇴한다 해도 권력 간의 차이와 그 차이로 인한 권력관계가 변하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한 것이 아니다. 그건 권력 배분의 불공정성과 그로 인한 부정의가 변함없이 한국 사회의 지배질서로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런 비관적 상황에서라도 사라진 권력이 본래의 주인인 시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면 아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민들이 정치 참여를 통해 새로운 권력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력의 종말>은 권력이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이동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권력은 손에 쥔 모래가 빠져나가듯 사라지고 있다. 권력이 주인에게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시민은 정부의 소유자가 아닌 정부의 서비스를 받는 고객으로, 공적 목표를 추구하는 집단적 존재가 아닌 개인적 존재로 변했다. 시민은 누군가가 만든 의제에 반응하는 수동적 존재가 된 것이다. 여론조사가 만들어낸 통계적 가공물, 이게 오늘날의 시민이다. 정치 엘리트가 시민의 참여 없이도 세금을 걷고 정책을 집행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발견한 결과다.

권력의 종말과 시민의 실종 간 이종교배가 낳은 프랑켄슈타인이 있다면 바로 한국 정치다. 한국에서는 권력이 필요한 곳에는 없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곳에는 너무 많다. 권력이 쓸모없는 것이다. 한국 정치가 나빠지는 이유이다.



이대근 논설주간



Posted by 경향 이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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