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톈안먼 성루에 오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한 달 뒤 워싱턴에 가서 미국을 달래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에 중국을 적대하는 발언은 삼갔을 것이다. 오바마 눈치를 보며 한·일 정상회담을 열겠다고 설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박근혜 외교란 것이 실은 베이징에서 죄 짓고 워싱턴 가서 죗값 치르는 것 같은, 섣부른 임기응변 외교였다는 점을 감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외교 난국에 처한 현실까지 감추지는 못했을 것이다. 만일 그가 남북관계 단절, 한·일 갈등 상황에 베이징행도 포기했다면 외교 무능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을 것이다.

만일 그가 미·중 균형 외교, 박근혜 정부 용어로 ‘조화·발전’ 구상을 갖고 베이징에 갔다면 어땠을까? 갑작스러운 베이징행으로 미국을 불편하게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한·중 협력이 양보할 수 없는 국익임을 분명히 하되 한·미동맹의 발전과 조화시키겠다고 미국을 납득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성루에서 내려온 지 한 달 만에 “한국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핵심축”이라며 중국의 등을 찌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중국은 그가 분위기에 휩쓸려 수사적 표현을 한 것으로 받아넘길 수 있다. 다시 그런 주장을 않는다면 모른 체할 것이다. 대신 그건 미국을 속이는 일이 된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건 시계추지 신뢰외교가 아니다.

박근혜는 결국, 베이징에 갔지만 그건 조화 없는 무작정 상경이었다. 그 실수를 만회하려다 워싱턴에서 다른 실수를 했고 그 때문에 서울에서 반전을 꾀해야 했다. 그러나 서울의 승자는 아베였다.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였던 위안부 문제에 한 치의 양보를 않고도 회담을 성사시키고 3국 정상회의 일본 개최도 합의했다. 남중국해, 산케이신문 기소 등 박근혜의 약점도 파고들었다.




위안부 문제는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의 성격상 단기간 양국 합의로 깨끗하게 해결할 길이 없다. 그게 해결될 때까지 양국 관계 전체를 희생하는 건 전혀 외교적이지 않다. 그런데 왜 위안부 문제를 최우선시했을까. 그의 초심을 들여다보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작성한 140개 국정과제의 한·일관계 부문 제목이 ‘한·일관계 안정화’다. 한·일 협력이나 발전이 아니다. 내용은 이게 전부다. ‘영토 문제는 역사 문제 차원에서 원칙에 입각하여 단호히 대응하되, 호혜적 협력관계 구축을 위한 노력도 병행.’ 그에게 한·일관계란 곧 영토·역사 문제이다. 협력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로 취급하고 있다. 집권 17개월 만에 낸 <희망의 새시대 국가안보전략>은 더 하다. 한·일관계는 단 한 항목 네 문장으로 제시했는데 세 문장이 모두 이렇게 시작한다. ‘일본과는 올바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정부는 올바른 역사인식을 기초로’ ‘부당한 역사왜곡 문제에 대해.’ 그 다음은 같은 내용의 반복이다. 그가 마치 주문을 외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인물을 다루는 방법은 두 가지다. 권력을 동원할 수 있는 상대일 경우 채동욱·유승민처럼 제거하고, 그렇게 하기 어려운 야당과 같은 상대는 냉대하는 것이다. 그는 이 방식을 대외관계에도 적용하고 있다. 채·유처럼 박근혜의 눈 밖에 난 존재가 아베와 김정은이다. 아베를 누를 힘은 없다. 위안부 문제를 내세워 냉대하는 게 답이다. 김정은은 좀 다르다. 박근혜가 보기에 불안정한 이 권력은 내부 한계와 외부 압박으로 무너질 것 같다. 그래서 대북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운 게 위장된 북한붕괴론, 즉 통일준비론이다. 박근혜는 북한·일본 없는 우아한 외교를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일본을 포기하고는 스스로 외교안보 목표로 제시한 국민안전, 한반도 평화, 동북아 협력을 달성할 수 없다. 한국 외교에서 북한·일본과 무관한 것은 없다. 아베·김정은, 피할 수 없으면 맞서야 한다.

이명박은 한·일 협력의 의지가 있었다. 대통령 인수위 자료에도 한·일관계에 관한 항목이 셋이나 되고 그 제목에는 모두 한·일 협력이 들어간다. 그래도 대립 관계로 끝났다.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때도 비밀접촉 하며 남북대화를 모색했지만 남북경색으로 정권의 막을 내렸다. 대화 의지가 있어도 이 정도인데 처음부터 전의를 다진 박근혜에게 돌아갈 것이 무엇인지는 불문가지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는 붉은 여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나온다. “빨리 달렸는데도 왜 제자리냐”고 묻는 엘리스에게 붉은 여왕이 말한다. “여기선 힘껏 달려야 이 자리에라도 계속 있을 수 있어.” 요즘 한반도 주변 정세가 그렇다. 나아가고 싶으면 더 빨리 달려야 하지만 박근혜는 상대가 변하기를 기다리며 제자리에 서 있다. 뒤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대근 논설주간



Posted by 경향 이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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