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 한 목욕탕이었다. 온탕, 냉탕을 수없이 오가며 아이처럼 물 첨벙대는 그 사나이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도 자신을 향한 시선을 의식했는지 한마디 했다. 나, 칠십 넘었습니다. 아픈 데 없어요. 아직도 운동합니다.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목욕탕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거북이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체로 허리는 굽고, 엉덩이는 늘어졌으며 피부는 쭈글쭈글했다. 그리고 잘 움직이지 않았다. 가끔 반쯤 주저앉은 채 걷는 이들을 볼 수 있지만 그건 필요한 최소한의 동작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처음 이곳에 올 때는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약간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곳은 아버지를 뵐 때 찾는 단골이 됐다.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오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걸어오는 품새가 위태로웠다. 무사히 탕까지 다가오기는 했지만, 탕의 계단 턱에 앉는 순간 균형을 잃고 왼쪽으로 거의 넘어지다시피 했다. 다시 시선에 들어온 것은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불안한 자세였지만 탕 안으로 들어오는 데는 성공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때밀이에게 몸을 맡긴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일흔여덟이에요. 병이 7개나 돼요. 당뇨, 고혈압, 척수염, 치매…. 요즘 같으면 여든다섯까지는 살아야 하는데, 그때까지 살지 모르겠어요. 저런 분(아버지)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밖에서는 마누라가 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쓰러질까봐 그러는 거지.

이 목욕탕에도 청장년들이 오기는 한다. 대체로 그들은 동료와, 혹은 아이와 함께 온다. 하지만 노인들은 항상 홀로다. 30년째 소방관을 하고 있는 친지를 오랜만에 봤다. 지난여름 이야기를 했다. 이웃집 문을 열어 달라는 신고를 받고 충돌했다. 옆집 주민은 그 집 할머니가 며칠째 보이지 않고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 동료 말을 들어봐도 그런 일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새해 첫날 경향 신춘문예 단편을 다 읽었다. 독거노인용 말상대 로봇이 나왔다.





201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세대 간 유대관계 조사에 따르면 덴마크, 스웨덴 노인의 절반이 손자를 돌봐주었다. 유럽 평균은 30%였다. 미국은 그보다 낮았고 한국은 9%였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시간 보내는 걸 흔히 한국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환상이다. 이젠 저 먼 북유럽 이야기, 이국적 풍경이다. 바쁜 손자는 할아버지와 놀 수 없다. 16광년 떨어진 견우와 직녀처럼 칠월칠석날에나 만날 운명이다. 한국에서 늙는다는 건 참 쓸쓸한 일이다.

아버지의 걸음은 어느 새 아기걸음으로 변했다. 함께 걸을 때 길에 돌부리가 있거나 턱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가끔 팔을 잡아 줘야 할 때도 있다. 아버지는 내가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나에게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찾아가서 잠깐 함께할 뿐이지만 아버지는 어린 나를 그렇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늙고 병들고 가난해진 그를 홀로 남겨 두고 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읽어주던 그림책이 생각난다. 할아버지는 보비를 무릎에 앉히고 이야기해주는 걸 좋아한다. 이야기가 끝나면 보비는 또 조른다. “할아버지, 저한테 어떻게 걸음마를 가르쳤는지 얘기해 주세요.” “난, 네 작은 손을 이렇게 잡고, 말했단다. 오른발, 왼발. 따라해 보거라라고 말이야.” 보비는 할아버지와 블록 쌓기를 즐겨한다. 놀이동산에서 신나게 놀기도 했다. 그런데 보비가 다섯 살 때 할아버지가 뇌졸중에 걸렸다. 침대에 누워만 있었고 보비를 알아보지 못했다. 슬픈 보비는 제대로 먹지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보비는 포기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앞을 떠나지 않은 채 혼자 블록 쌓기를 하며 할아버지가 반응하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조금씩 나아졌다. 보비는 할아버지가 손을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식사를 도왔다. 말도 약간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이야기” 하면, 보비는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할아버지는 “너, 나, 걷자”고 했다. 보비는 무슨 뜻인지 잘 알았다. 보비는 할아버지 앞에 선 다음 할아버지가 자기 어깨를 짚고 일어서도록 했다. “좋아요, 할아버지. 오른발.” 할아버지는 한 발 움직인다. “이번엔 왼발.” 보비의 여섯 번째 생일 때 할아버지는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더 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다시 보비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마친 할아버지가 말했다. “보비야, 나한테 어떻게 걷는 법을 가르쳤는지 얘기해다오.” “할아버지가 제 어깨를 이렇게 짚으시고요, 전 말했어요. 오른발, 왼발 따라해 보세요라고요.” (<오른발, 왼발>, 토미 드 파올라 글 그림)

이 땅의 모든 할아버지에게 이 동화를 바친다.



이대근 논설주간




'정동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골 목욕탕에서  (0) 2016.01.05
[이대근 칼럼] 우리는 이렇게 살 이유가 없다  (0) 2015.11.24
[여적]사랑의 자물쇠  (0) 2015.06.02
[이대근칼럼]봄날은 간다  (0) 2015.05.20
[여적]관상과 성형  (0) 2015.04.29
[여적]두 손 든 아이  (0) 2015.04.01

Posted by 경향 이대근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