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부>에서 돈 콜레오네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내 요구를 따르든가, 목숨을 내놓든가.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체제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도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 것일까? “북한이 반드시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갈 것” “이제 선택은 북한의 몫”이라는 말로 미루어 그렇게 믿는 것 같다. 북한 앞엔 핵 포기·정권 붕괴의 양자택일밖에 없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이런 생각일 것이다. 그런데 콜레오네는 제안을 실현할 방법이 있었다. 박 대통령에게도 있을까?

민생 분야는 대북 제재에서 예외다. 중국은 정세판단에 따라 민생 분야를 확대할 수 있다. 북한의 시장화가 상당히 진척됐다. 소비재는 시장에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대신 물가가 오른다. 살 여력이 없는 주민들은 고통을 겪을 것이다. 그래도 박근혜·김정은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주민들의 고통은 두 사람에게 변수가 되지 않는다. 북한 같은 전체주의 체제는 외부 압력이 가해지면 분열하기보다 결속한다. 정권은 더 공고해질 것이다. 대북 압박이 거세질수록 핵 포기 아닌, 핵무장의 필요성과 정당성이 그만큼 강화되고 핵무기에 대한 집착 또한 더 커질 것이다. 그들은 ‘이럴 때 핵이 없었으면 이미 무너졌을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릴 것이다. 물론 제재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북핵 문제를 방치했던 한·미가 뭔가 하는 것처럼 보여줌으로써 북핵정책의 실패로부터 관심을 돌릴 수 있다.

북한은 압박과 버티기 게임이 싫증나면 언제든 바꿀 수 있다. 대화하자는 신호만 보내면 된다. 중국·러시아는 이미 제재의 목적이 대화와 협상이라고 했다. 북한이 대화로 선회했으니 국제사회가 북한과 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때 박 대통령의 선택지는 세 가지다. 첫째, 비핵화 없는 대화 제의는 제재를 모면하려는 술수라고 무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으로 달려간다. 북한이 먼저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유예를 약속, 대화의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한·미 공동 입장을 정리한다. 중국은 평양을 오가며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 추진 방안을 내놓는다. 미국은 이미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이 이 방안에 관심을 보이는 순간 한국은 곤란해진다. 북한이 아니라 한국이 고립된다.

둘째, 대화를 수용하되 북한이 굴복했으니 제재와 원칙의 승리라며 정치적 치적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대화는 지지부진하고 북핵 문제는 진전되지 않겠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관심사는 북핵 문제 해결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이런 그를 북한은 얼마든지 골탕 먹일 수 있다. 대화를 접고 다시 핵억제력 강화 조치를 취하면 된다. 사실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상대와 대화해서 핵을 포기할 바보는 없다. 셋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안을 제시하며 북핵 문제 해결에 진지하게 나서는 것이다. 가능성이 가장 낮은 시나리오다.


2일 중국 랴오닝성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압록강대교(중조우의교)를 통해 차량들이 중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가 채택되기 전인 1일부터 단둥을 거쳐 오는 북한산 석탄 수입을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둥_연합뉴스



보수라면 북한에 현실주의적 접근을 해야 할 텐데 의외로 비현실적이다. 마음대로 상상한 북한을 정책 대상으로 삼는다. 이명박은 비핵·개방을 하면 1인당 GDP를 3000달러로 만들어주겠다고 제의하면 북측이 고마워할 것으로 생각했다. 김정일 당신은 무능하니 내가 대신 당신의 정권을 먹여살려 주겠다, 당신은 핵만 포기하면 돼, 이런 뜻인 줄 이명박은 몰랐을 것이다. 박근혜의 핵 포기냐, 붕괴냐 하는 압박도 현실의 북한을 상대로 하지 않는 점에서 같은 발상이다.

박근혜는 김정은을 한 손에 쥐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박근혜가 김정은의 행동에 종속되어 있다. 박근혜는 이미 사드 배치, 개성공단 폐쇄, 나진·하산 사업 중단, 북한식당 출입 자제 등 카드를 다 썼지만, 김정은 태도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 이제 김정은 차례다. 곧 대화하자고 할 수도 있고, 사태를 더 악화시키다 위기를 극적으로 끌어올린 뒤 대화 국면으로 갑작스레 전환할 수도 있다. 가령, 대화하겠다, 그런데 제재의 모자를 쓰고는 협상장에 앉을 수 없다, 이 한마디로도 판을 흔드는 게 가능하다. 그러면 이에 동조하는 중·러에 의해 국제 압박 공조는 균열되고 중국의 제재는 상당 부분 풀릴 것이다. 이때 북한은 다양한 카드를 구사할 공간을 확보할 것이고, 카드를 소진한 박근혜는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북핵 해결을 원하는가? 그러면 목표에 집중하라. 제재는 수단일 뿐이다. 제재로는 북한이 대화 시늉만 하고 돌아서기를 반복하는 걸 막을 수 없다. 북한은 핵에 생존을 걸고 있다. 그걸 막으려면 상응하는 큰 게임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의 손에 아무것도 없다. 박근혜는 콜레오네가 아니다.


이대근 논설주간



Posted by 경향 이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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